삼국시대부터 21세기 초반 한국의 미인 트렌드는 놀라울 만큼 많이 바뀌었습니다. 풍만한 미인을 선호하던 시대에서 귀족적인 우아함을 추구하던 과거에서 점차 복스러운 얼굴형이 선호되다 완벽한 컴퓨터 미인이 선호되고 그러다 평범하고 귀여운 미인 스타일에서 동안 미인이 선호되는 등 한국의 미인 기준이 어떻게 변화되었는지 살펴보겠습니다. 미의 기준 변천 의미 삼국시대는 풍만한 미인이 선호되었고 고려 귀족 시대에는 우아함을 그리고 조선시대에는 요염한 미인을 선호하였다고 합니다. 당연히 고대에는 풍요나 다산을 상징하는 통통한 여성을 선호하게 된 것이고 궁중문화가 발달한 고려 시대에는 품위를 중시하게 된 것입니다. 그러다 조선시대에는 여염집 여인과 기생들의 구분이 확연하게 차이 나면서 미의 관점을 끼 부리는 요염한..
엘리자베스 테일러는 20세기 미의 여신 같은 존재입니다. 다들 말로만 세기의 미인 세기의 미인 그래서 정말 그런가 싶어 조금 촘촘히 살펴봤습니다. 그녀가 부모의 서포트가 없었다면 과연 그렇게 대배우로 성공할 수 있었나 싶기도 하고요. 그리고 무엇보다 그녀를 빛나게 한 것은 이목구비도, 피부도 아닌 오로지 보석 덕분이었던 것 같습니다. 누가 봐도 평범한 소녀 엘리자베스 테일러가 남들보다 남달라 보인 부분이 있다면 속눈썹이 풍성하다는 것과 눈동자 색이 특이하다는 점뿐입니다. 서양인 중에서도 희귀한 색이라고 하던데요. 빛에 따라서 옅은 보라색부터 짙은 푸른색까지 다채로운 컬러를 지녔습니다. 그녀의 바이올렛 눈동자는 아마도 그녀에게 시선을 집중하게 만드는 데 크게 일조한 것 같은데요. 게다가 위의 이미지가 15..
에스테르 카냐다스 혹은 에스터 카다스로 불리는 90년대 슈퍼모델은 상당히 투박한 마스크에 특히 울퉁불퉁 도톰한 입술이 그녀의 트레이드 마크였는데요. 알고 보니 성형한 입술이었습니다. 성형을 안 했으면 평범한 게르만 민족처럼 보일 뻔했는데 탁월한 선택이었던 것 같습니다. 입술 성형으로 인생이 달라진 에스테르 카냐다스 에스테르 카냐다스가 50줄에 입술을 두툼하게 성형했다면 전형적인 성형 얼굴로 퇴물 취급을 받았을 테지만, 그녀는 스무 살도 되기 전에 입술을 도톰하게 수술하여 개성 만렙을 획득하게 됩니다. 두툼한 입술 이렇게 두툼하고 투박한 입술이 현재 기준으로는 매우 천박하고 싼티가 날 수 있지만 90년대말 까지만 해도 이런 입술 형태는 상당히 드문 편이었습니다. 두툼한 입술이 유행하지도 않았을뿐더러 그녀처..
세기의 패션 아이콘이지만 국내서는 신정환 닮은 모델로 유명해져서 다소 유감인 케이트 모스는 데뷔 초부터 줄곧 얇은 눈썹을 고수한 셀럽입니다. 보통 유행 주기에 따라 눈썹이 두껍거나 얇거나 혹은 진하거나 옅거나 등 달라지기 마련인데요. 케이트 모스는 짙고 옅은 정도는 수시로 바뀌었으나 한 번도 두꺼운 눈썹을 한 적이 없습니다. 타고난 눈썹 그대로 십대의 어린 소녀 시절부터 눈썹 숱이 적고 얇고 미약하게 그리고 다닌 케이트 모스입니다. 50살이 된 그녀는 얼굴 시술도 하고 눈썹을 심은 것인지 문신을 한 것인지 눈썹 결을 살린 티가 나는데요. 그녀 눈썹 중에 가장 짙어 보이긴 해도 다른 사람들에 비해 현저하게 눈썹이 얇고 숱도 적고 길이도 짧은 편입니다. 한결같이 얇은 눈썹 케이트 모스는 십 대에도 이십 대에..
90년대 최고 톱모델 크리스티털링턴은 1969년생으로 1986년에 데뷔하자마자 특급 스타가 되었습니다. 슈퍼모델 1세대로 미의 전령사가 된 그녀는 성형이나 흔한 피부 리프팅 흔적도 없이 자연스럽게 늙어가는 것을 인정하는 모습입니다. 그리고 그런 모습이 누구보다 아름답습니다. 1986년부터 2023년까지 미묘하게 달라진 그녀의 메이크업 및 미모 변천사를 감상하겠습니다. 1986~1988 1986년 데뷔한 미국 태생의 슈퍼모델 크리스티 털링턴은 당대 예쁘고 완벽한 모델들, 그러니까 슈퍼모델이란 말이 저절로 붙게 한 공로가 가장 큰 모델 중 한 명입니다. 얼굴보다 몸매가 더 중시되는 런웨이 모델이 이렇게 아름다운 것은 사치로 보일 정도였으니까요. 크리스티 털링턴은 그렇게 압도적인 완벽 미인 1세대에 가까웠습니..
릴리 엘시는 1886년 4월 8일 웨스트 요크셔의 암리 태생으로 영국의 배우이자 가수였습니다. 1890년대 아역 스타로 시작한 릴리는 1907년 개봉한 메리 위도우에서 큰 성공을 거두었습니다. 무대에서 빛나는 연기 그리고 남다른 미모로 에드워드 시대에 가장 사진도 많이 찍히고 사랑을 많이 받은 스타 중 한 명이었습니다. 1900년대 초반 최고의 스타 본명 엘시 코튼의 어머니는 숙박 시설을 운영하면서 양재사이기도 하였으며 그녀의 아버지는 연극 노동자였습니다. 그녀의 가족은 맨체스터에 살았습니다. 어릴 때부터 흉내를 잘 내고 끼가 다분했던 그녀는 일찍 배우가 되기로 결심합니다. 하지만 실제 그녀의 성격은 고통스러울 정도로 수줍음을 많이 타는 성격이라고 하였습니다. 하지만 10살의 나이로 그녀는 작은 배역을 ..
수지 파커는 1940년대부터 60년대까지 활동한 미국 태생의 모델입니다. 언니 도리아의 조언을 따라 모델 활동을 시작한 이후로 언니보다 더 유명해진 케이스죠. 세계 최초의 슈퍼모델 중의 한명으로 특히 샤넬 브랜드의 총애를 받은 우아하고 고급스러운 마스크의 모델입니다. 대가가 따랐던 매력적인 삶 1940년대 활약한 모델치고 그녀처럼 요즘 시대 못지않게 주목을 받은 스타는 드물 것입니다. 선천적으로 아름다운 그녀는 탁월함이란 수식어를 달고 살며 그녀가 광고하는 모든 제품은 불티나게 팔렸다죠. 수지 파커는 또한 당대 포토그래퍼들에게 가장 잘 나가는 하이 패션 뮤즈이기도 했습니다. 특히 코코 샤넬은 그녀를 자신의 뮤지로 선택하였고, 그 와중에도 수지는 역대 들어본 적도 누군가 제시한 적도 없는 큰 돈을 모델료로..
비벌리 존슨은 보그 잡지의 표지를 장식한 최초의 아프리카계 미국인 모델입니다. 70년대 인종을 초월하여 패션 무대를 장악한 그녀는 런어웨이는 물론 다양한 분야에서 활약하며 매력을 뽐냈습니다. 무대 위를 넘어 텔레비전 리얼리티 쇼를 포함한 장편 영화와 각종 텔레비전 프로그램에도 출연하였습니다. 변호사가 되려던 수영선수 출신 비벌리 존슨 비벌리 존슨은 1952년 10월 13일 미국 뉴욕 버펄로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녀는 고등학교 때 실력 있는 수영 선수로 1968년 올림픽 출전 자격을 딴 것이 아닌 따낼 뻔했을 정도로 보통 실력은 아니었던 모양입니다. 하지만 그녀의 꿈은 국가대표 수영선수가 아닌 변호사였고 법을 공부하기 위해 보스턴에 있는 노스이스턴 대학교에서 전액 장학금을 받으며 다녔습니다. 대학 1학년 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