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4년 4월 5일생 신민아는 1998년 중학교 2학년 때 키키 잡지 전속모델 1기로 데뷔한 이래 줄곧 톱스타 자리를 유지하고 있는 배우입니다. 등장하자마자 거의 모든 종류의 잡지 표지를 장식하고 소속사도 없는 상태에서 광고 모델 제의가 쇄도하여 억대소녀로 불릴 정도였다고 합니다. 그녀의 남다른 매력과 가능성으로 이렇다 할 히트 작품이 없음에도 꾸준히 광고 시장에서는 몸값이 높았기에 톱스타로 안착하는 데는 무리가 없어 보였습니다. 독보적인 마스크와 완벽한 몸매 그리고 초기 출연하는 영화나 드라마들도 죽쑤는 일이 많았지만 그녀의 위상이 건재했던 이유는 독보적인 마스크와 완벽한 몸매 때문이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신민아 본명 양민아였지만 본격적인 연예계 활동을 하면서 신민아란 예명을 쓰게 됩니다. 그리고 2..
1950년대 메이크업 키워드는 우아함과 완벽합니다. 그 어떤 때보다 미적 가치를 중시 여겼기에 그만큼 화장에 대해서도 민감하였고 전쟁 후라 산업이 발달하여 그 어떤 때보다 화장 기술과 화장품이 발달한 시기였습니다. 1950년대 영향을 미친 배우들 1950년에는 2차 세계 대전이 종료되면서 서양 패션의 전환기를 맞이하였습니다. 뉴룩을 창시한 디자이너 크리스찬 디올의 영향도 있었지만 메릴린 먼로라는 걸출한 여배우의 영향력이 가장 크다고 볼 수 있을 것입니다. 메릴린 먼로의 금발 스타일에 볼륨 있는 메이크업 스타일 그리고 뾰족한 가슴에 모래시계형 실루엣은 상당히 오랜 기간 남녀 모두에게 추앙받는 스타일이 됩니다. 반면 동시대 정반대 스타일로 여성들을 매료시킨 배우로는 오드리 헵번이 있습니다. 마이크로 뱅 헤어..
1940년대는 현대 메이크업의 초석을 다진 시기입니다. 무엇보다 1940년대에는 전쟁 중인 군인들의 영향을 받아서 남성들에게 성적 매력이 있는 여성들의 이미지가 이상적인 스타일로 등장하였습니다. 육체적이고 관능적인 모습이 이상적인 여성들을 가리켜 성적 여신이란 말로 불렀습니다. 1940년대 메이크업 특징 2차 세계대전 시기로 미국이 세계 패션의 중심지로 부상하였고 디올의 '뉴 룩'의 시대가 탄생하였습니다. 디올이 만든 뉴룩 스타일에 어울리는 메이크업은 입술과 눈썹을 섬세하고 정교하게 표현하면서 의복과 조화를 이루게 하는 거였습니다. 또한 이시대에 등장한 뉴룩은 머리에서 발끝까지의 패션을 바꾸어 놓았고, 사람들은 두상을 되도록 작게 만들려고 노력했습니다. 더 짧아진 헤어스타일과 함께 화장의 강조점이 바뀌어..
선사시대부터 2020년대까지 화장의 역사 요약입니다. 선사시대 화장 특징 화장에 대한 관심은 인간이 자신을 감성적인 혹은 주체적인 존재로 인식하기 시작한 이후로 일어났습니다. 인간이 의식하든 의식하지 못했든 자연의 변화에 따른 아름다운 현상 특히 색깔과 빛에 관한 신비한 체험을 자신에게 옮기고 싶어 했습니다. 그렇게 자연의 색을 차용하여 자신을 더욱 매력적으로 보이게 했습니다. 그것이 신들을 기쁘게 하고 군림하고 장악하고 힘을 더하는 데 효과가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집트 시대에 와서 처음으로 화장품 제조가 완성되었습니다. 고대 화장 특징 고대 이집트인 고대 이집트인들이 사용하던 화장품은 대부분 종교적 의미를 지녔습니다.또한, 향유과 파우더, 색조 제품, 향수 등을 제조하면서 이집트 여성들..
1910년대 보수적이고 지극히 단정하고 엄숙한 깁슨걸 스타일이 유행했다면 1920년대는 이에 반기를 들며 요염함으로 잔뜩 무장한 스타일이 유행하게 됩니다. 1920년대 하얀 피부에서 까만 피부를 선호한 이유 1920년대는 중산층이 등장하면서 여성들도 레저문화를 즐기게 된 점입니다. 수영복을 입고 일광욕을 즐기다 보니 과거 선호하던 흰 피부에서 햇볕에 그을린 피부가 있어 보이는 스타일로 각광을 받게 됩니다. 그래서 서로 경쟁하듯 까맣게 탄 피부를 과시하면서 인스턴트 탠 제품이 출시되고 불티나게 팔렸습니다. 또한, 이탈리아 출신 여왕이 프랑스에 미를 전파한 이후 프랑스 사람들은 이것을 그대로 전수 및 계승하여 프랑스식 뷰티는 전세계인의 환호를 받게 됩니다. 세련되고 우아한 분위기는 부유층 여성들을 열광하게 ..
서양의 1900년대 초반은 상당히 보수적이면서 가부장적인 분위기 속에서 여성들의 의상은 상당히 조신해 보이면서 액세서리는 화려한 특징을 지닙니다. 소비주의와 낙관주의 그러면서 낭만을 추구하는 1900년대 패션과 메이크업 스타일에 대해 알아볼까요? 1900년대 사회적 배경 산업혁명의 영향으로 직업과 거주의 대이동과 변화가 찾아오면서 상류층의 지위가 위태로운 가운데 그들은 자신의 위치를 더욱 공고히 유지하는 데 스타일로 과시하였습니다. 하지만 기계의 발달로 기성복이 대량생산되면서 평민들도 상류층과 비슷한 수준의 옷을 입는 것이 가능해졌습니다. 이 시기에 긴장갑이나 모자 그리고 양산 등이 유행한 이유 중에도 상류층의 소장품이었지만 하층민의 신분 커버요으로 활용된 감도 없지 않습니다. 예를들어 거친 손을 가리기..
서양의 중세시대는 화장과 과학을 같은 선상에 놓고 다룬 경향이 있습니다. 더욱 아름답게 보이게 하는 것을 포함하여 피부를 아름답게 유지 및 관리하는 것은 물론 청결 문제 등을 미학적 관점보다는 과학적 관점에 치중한 것이지요. 그래서인지 얼굴의 털을 모조리 뽑고 물론 여기에는 눈썹 왕창 뽑은 짤은 많이들 보셨겠죠? 그리고 얼굴은 표백에 가까울 정도로 하얗게 만드는 것을 추구하였고 머리색도 밝게 물들이는 것을 선호하였습니다. 중세시대 미학 특징 중세시대 사람들에게 화장은 여성에만 국한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특히, 남성들은 늙어가는 외모를 수습하기 위해 집중하였고요 그중에서 대머리 치료에 집중한 것부터 머리색 염색을 위해 돈을 많이 썼습니다. 남녀 모두 더 젊어 보이려는 노력은 동서양 시대를 막론하고 불변인..
한때 화장을 전혀 하지 않은 것처럼 보이는 쌩얼 메이크업이 유행한 적이 있는데요. 요즘은 피부과 시술이나 화장품이 워낙 발달해서 진짜 베이스 크림만 발라도 피부톤이 달라졌기에 쌩얼처럼 보이는 화장은 무색해진 감이 있습니다. 게다가 사람들 인식이 쌩얼이나 쌩얼처럼 보이는 것에 별로 의미를 두지 않는 것 같습니다. 이왕 할 거면 티 나게 뭔가 내숭 가득한 느낌이 들던 쌩얼처럼 보이는 화장은 요즘 시대에는 어울리지 않는 것 같습니다. 여드름이 얼굴에 만연해도 주근깨가 득시글해도 차라리 그런 맨 얼굴로 다니는 용기와 솔직함에 호감을 보이는 분위기입니다. 그러니까 쌩얼처럼 보인다거나 감쪽같아 보이는 화장 스킬은 이제 넣어두시고요. 안 할 거면 그냥 맨얼로 다니고 할 거면 제대로 완벽하게 티 나는 화장이 더 그럴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