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릴리 엘시는 1886년 4월 8일 웨스트 요크셔의 암리 태생으로  영국의 배우이자 가수였습니다. 1890년대 아역 스타로 시작한 릴리는 1907년 개봉한 메리 위도우에서 큰 성공을 거두었습니다. 무대에서 빛나는 연기 그리고 남다른 미모로 에드워드 시대에 가장 사진도 많이 찍히고 사랑을 많이 받은 스타 중 한 명이었습니다. 

 


1900년대 초반 최고의 스타

 

 

본명 엘시 코튼의 어머니는 숙박 시설을 운영하면서 양재사이기도 하였으며 그녀의 아버지는 연극 노동자였습니다. 그녀의 가족은 맨체스터에 살았습니다. 어릴 때부터 흉내를 잘 내고 끼가 다분했던 그녀는 일찍 배우가 되기로 결심합니다. 하지만 실제 그녀의 성격은 고통스러울 정도로 수줍음을 많이 타는 성격이라고 하였습니다.

 

 

하지만 10살의 나이로 그녀는 작은 배역을 맡기 시작하면서 무대 위에서는 마음껏 끼를 발산했습니다. 그리고 1900년경부터는 엘시 코튼에서 릴리 엘시라는 예명을 쓰게 됩니다. 

 

 

 


아역 스타에서 최고의 배우

 

그녀를 가장 성공적인 배우로 이끈 작품은 메리 위도우였습니다. 업계에서 엄청난 성공 이후에 그녀는 부유한 직물 제조업자의 아들 존 이언 불로우 소령과 결혼하기 위해 무대를 잠시 떠났지만 결혼 생활은 대부분 불행하였다고 합니다. 그런데다 그녀는 빈혈을 포함한 각종 질병에 시달렸고 몇 차례의 수술을 받기까지 했습니다.  무대에서 은퇴하지는 않았지만 그녀는 가끔 있는 배우란 소리를 들을 정도였습니다. 그리고 남편은 아내가 무대에서 은퇴하기를 원했습니다.

 

 

결국 그녀는 가끔 전쟁에 도움이 되는 자선 공연을 하는 것 이외에는 무대에서 영원히 은퇴하였고 은퇴 직후 그녀는 너무나 행복해 했다고 합니다. 

 

 

 

 

 


 

불행한 결혼

 

 

릴리가 무대에서 어떤 호소력있는 연기를 했는지 우리는 절대 알 수가 없지만, 그녀의 이미지는 100년이 훨씬 지난 지금 봐도 눈에 띄는 미인이라는 점을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인지 그녀의 정적인 이미지는 수요가 많았고 특히 남성 팬들이 포카로 간직하는 일이 많았다고 합니다. 아마 당대 삽화가들을 비롯해서 후배 아티스트들도 그녀의 이미지를 참고하여 그림을 많이 그렸을 거라고 유추되는데요. 그렇게 남성팬들이 많았음에도 정작 그녀는 남편 이외의 다른 남자에게는 조금도 관심이 없는 철벽녀였다고 합니다. 

 

그녀는 몇 년 후 다시 무대로 돌아왔지만 단순 취미처럼 활동한 것 같고요. 1920년 남편과 함께 레드말리 드어비톳이라는 마을로 이사했습니다. 이곳에서 부부는 10년 동안 여우 사냥과 사교 모임을 즐기며 보냈습니다.

 

 


 

말년은 요양원에서 

 

그러나 무엇을 해도 그녀는 무대에서 연기하지 않는 이상은 불행한 인생이었던 모양입니다. 그녀는 1930년 극심한 신경쇠약에 시달리면서 이혼하였습니다. 그녀는 오랜 시간을 양로원과 스위스 요양원에서 보냈고 심각한 정신 질환을 앓고 있다는 진단을 받고 급기야 뇌 수술까지 받았습니다. 그리고 그녀의 말년은 세인트 앤드류 병원에서 보냈습니다. 그녀는 76세의 나이로 사망했고 골더스 그린 화장장에서 화장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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