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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지 파커는 1940년대부터 60년대까지 활동한 미국 태생의 모델입니다. 언니 도리아의 조언을 따라 모델 활동을 시작한 이후로 언니보다 더 유명해진 케이스죠. 세계 최초의 슈퍼모델 중의 한명으로 특히 샤넬 브랜드의 총애를 받은 우아하고 고급스러운 마스크의 모델입니다. 

 

 

 

 

 


대가가 따랐던 매력적인 삶

 

 

1940년대 활약한 모델치고 그녀처럼 요즘 시대 못지않게 주목을 받은 스타는 드물 것입니다. 선천적으로 아름다운 그녀는  탁월함이란 수식어를 달고 살며 그녀가 광고하는 모든 제품은 불티나게 팔렸다죠. 수지 파커는 또한 당대 포토그래퍼들에게 가장 잘 나가는 하이 패션 뮤즈이기도 했습니다. 특히 코코 샤넬은 그녀를 자신의 뮤지로 선택하였고, 그 와중에도 수지는 역대 들어본 적도 누군가 제시한 적도 없는 큰 돈을 모델료로 제시하게 됩니다. 

 

 

 

 

모델에만 국한하는 것이 아닌 게리 쿠퍼나 캐리 그랜트 그리고 조안 크로포드와 같은 배우들과 함께 동급으로 연기하는 헐리우드 배우로 안착합니다. 하지만 그녀의 매력적인 삶에는 대가가 따라야 했습니다. 

 

 

 

 


수지 파커의 우아한 탄생

 

 

수지 파커는 1932년 10월 28일 미국 택사스주 앤안토니오에서 발명가와 전업주부 사이에서 세실리아 앤 르네 파커란 이름으로 태어났습니다. 그녀의 언니 도리안 레이 파커는 그녀보다 먼저 모델계에 데뷔하여 그녀를 모델 세계로 이끌어준 귀인이었고요. 도리안은 1940년대 초반에 데뷔하여 잡지 표지 모델계를 주름잡는 슈퍼스타였습니다. 그리고 도리안은 1947년 전설적인 모델 에이전트 아일린 포드에게 14살의 여동생이 있는데 모델로 어떻겠느냐며 소개합니다.

 

 

 

 

그러나 포드에서는 동생 역시 도리안처럼 작고 마르고 창백한 이미지를 연상하며 일단 만나 보자 하였습니다. 그러나 관계자들은 수지를 만난 후 충격을 받았습니다. 키가 165센티미터인 도리안과 다르게 수지 파커는 177센티가 넘었고 뼈가 컸고 당근처럼 빨간 머리에 초록색 눈 그리고 주근깨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수지는 여름 방학동안 뉴욕에 가서 워킹 연습을 하였고 포드는 갑자기 태세 전환을 하더니 보그 편집장에게 데려가 당신이 상상할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생명체라며 그녀는 모든 사람의 모든 것이라고 말하였습니다. 그렇게 수지 파커의 매력은 단순한 아름다움을 초월했지만 슈퍼모델로의 발돋움은 시작되었습니다. 

 

 

 

변화무쌍한 패션 산업 현장에서 수지 파커는 카멜레온 그 자체였습니다.  특히 서양인들이 좋아하는 높은 광대뼈의 소유자인 그녀는 매일 아침마다 높은 광대뼈를 갖게 해주신 신께 감사 기도를 올렸습니다. 

 

 

 


 

세계에서 가장 잘 나가는 여성

 

잘 나가던 그녀는 레브론 화장품 광고 계약 분쟁 건으로 전쟁이 시작되었지만 레브론을 제외한 수백개의 광고에서 포즈를 취하며 매혹적인 아름다움을 발휘하였습니다. 또한, 그녀의 명성은 세계 전역으로 퍼지기 시작합니다. 그녀는 국제적으로 성공하였고 새로운 미국 여성의 전형으로 부상합니다. 건강하고 확신에 차 있고 자신의 삶을 책임지는 사람이란 수식어가 따라 다니며 그 시대의 여성들에게 단순한 상징 이상이 되었습니다. 또한, 여성들 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남성들이 데이트하고 싶어했던 여성이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수지 파커는 수많은 패션 컬렉션과 함께 파리와 세계를 휩쓸고 다녔습니다. 

 

 

 

수지 파커의 반짝이는 초록색 눈과 높은 광대뼈 그리고 완벽한 비율의 몸매로 크리스찬 디올은 그녀를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성이라고 부를 정도였습니다.  그리고 1952년 수지 파커는 샤넬을 대표하는 얼굴로서 스타가 되었습니다. 그녀는 세계에서 가장 돈을 많이 버는 모델이 되었고 60개가 넘는 잡지와 광고에서 그녀가 가장 추구하는 자유로운 포즈를 취했습니다. 60년대까지 그녀는 어디에든 등장했고 모든 사람들을 위해 무언가를 제공하는 인물이 되었습니다. 

 

 

 


 

영화 배우와 결혼 이야기

 

1957년 당연히 헐리우드가 그녀에게 러브콜을 요청했고 그녀는 오드리 햅번 주연의 영화로 데뷔를 하였습니다. 그리고 햅번과 파커는 촬영 중에 친구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같은 해 그녀는 영화 키스 더미에서 전설적인 배우 캐리 그랜트와 제인 맨스필드가 주연을 맡은 영화에서 비중있는 역할을 맞게 됩니다. 그레이스 켈리처럼 얼음같은 차가운 매력으로 종종 칭찬 받던 수지 파커는 여러편의 영화에 출연했으나 여주인공보다는 비중있고 매력있는 부분을 차지한 것으로 끝난 게 아닌가 합니다. 수지 파커는 스틸 카메라에서는 뛰어난 포즈로 훌륭한 연기를 했지만 움직이는 카메라 앞에서 연기할 때는 자유롭고 편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1960년 영화 촬영 중에 미래의 남편 브래드퍼드 딜먼을 만나게 됩니다. 1956년 배우이자 모델 그리고 사진가인 가드너 맥케이와 약혼한 사이였거든요. 그러나 그녀의 사생활을 이보다는 조금 더 복잡했습니다. 그녀는 17살 때 그러니까 1950년 연인이던 찰스 스태튼과 결혼하기 위해 고교를 중퇴하였고 1953년에 이혼하였습니다. 그리고 1955년에는 프랑스 언론인이자 소설가인 피에르 드 라 살레와 비밀리에 결혼한 것이 훗날 밝혀졌습니다. 둘 사이에는 1959년 딸 조지아가 태어났고요. 그러나 1961년 이들은 이혼하였고 1963년에 배우 브래드퍼드 딜먼과 결혼하였습니다. 딜먼이 전처와의 사이에서 낳은 두 아이와 수지는 딜먼과의 사이에서 세 아이를 낳아서 키웠습니다. 그렇게 부부는 6명의 아이들을 함께 길렀습니다. 

 

 

 


 

누구보다 알차게 살다 간 인생

 

 

 

수지 파커는 그렇게 인생을 알차게 살다가 호흡기 문제 및 당뇨에 관절염 등을 앓다가 70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녀의 관절에 문제가 생겼던 것은 여러 번의 교통 사고도 원인 중 하나로 보입니다.  1958년 그녀는 아버지가 운전하던 차에 함께 탔다가 얼굴만 빼고 두 팔이 부러지는 등 심한 부상을 당한 적이 있습니다. 이 사고로 아버지는 사망하였고요. 그리고 몇 년 후 1964년에도 교통 사고로 부상을 입은 후에는 모델 생활도 은퇴하고 대부분 집에서만 지냈습니다. 

 

어릴 때도 극심한 말괄량이어서 여러 차례 다쳐서 뼈가 부러진 적이 있다고 합니다. 그녀는 오랫동안 알레르기를 앓았고 1990년대부터는 궤양이 생기고 고관절 수술을 받는 등 인생의 마지막 5년은 병원 안팎에서 보냈습니다.  그리고 급기야 투석 치료를 끝내기로 하였습니다. 그녀는 2003년 5월 3일 캘리포니아의 몬테시노에 있는 집에서 가족들이 보는 가운데 눈을 감았습니다. 

 

 

그녀는 평균 수명에는 미치지 못하게 살긴 했지만 한결 같이 그녀에게는 100세까지 게으르게 사는 인생보다 훨씬 값지게 잘 살다 갔다고 얘기합니다. 언젠가 그녀는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저는 거짓말을 하지 않습니다. 단지 이야기를 꾸미기만 할 뿐입니다. 진실은 너무 무미건조하니까요. 그녀의 인생과 아름다움은 전혀 지루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그녀와 평생 함께 산 남편 딜먼은 2018년 87세의 나이로 사망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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