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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0년대 메이크업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눈주변을 어둡게 스모키한 느낌의 화장을 한 것과 창백 피부 위에 발그레한 볼, 그리고 앵두같이 작고 요염한 입술 화장이 특징이었습니다. 만화 캐릭터 베티붑을 연상하면 될 것 같습니다. 전쟁 후 남성의 수가 부족해지자 경쟁이 치열해진 여성들이 관능적이면서 요염한 매력으로 이성을 유혹하는 메이크업이 발달합니다.

 

1920년대 메이크업 역사

 

1920년대는 역사상 처음으로 여성의 얼굴 모양이 국제적 관심 대상이 되었습니다. 얼굴에 대한 표준 미인형이 공표되면서 서양 전역에 전파되었고 그렇게 미의 기준이 만들어집니다. 보편적 미의 기준을 정립하기 위해 혹은 추구하기 위한 일환으로 세계 미인 대회를 개최하였고 그에 관한 인기도 엄청났습니다. 이는 미의 표준화를 정착시키기보다 대중의 미에 대한 관심 증가에 따른 결과로 보여집니다.

 

 

서양인은 한동안 일을 안 한 귀족을 상징하는 하얀 피부에 열광하다 아프리카 문화의 관심이 증가하고 여가 문화를 중시하게 되면서 햇볕에 그을인 피부가 새로운 부의 상징으로 여겨져 짙고 어두운 화장을 추구하기 시작합니다.

 

 

프랑스 뷰티를 선호하던 1920년대

 

 

특히 프랑스 뷰티를 선호하여 서양 여성들은 메이드 인 프랑스 뷰티 제품이라고 하면 무조건 선호하는 경향을 보였습니다. 그러한 인식이 아시아 전역에도 퍼져 현대인들도 프랑스 화장품, 프랑스 제품은 선호하는 현상이 이어집니다.

 

무대에서 활약하는 퍼포먼스 위주의 무용수 중심에서 모델에게 관심이 이전됩니다. 모델이란 직업이 사회적 출세를 의미하면서 상류층 여성들도 모델 직업을 선망하게 됩니다. 요즘처럼 패션쇼 무대위에서 활약하는 모델이 아닌 뷰티 살롱에서 옷을 입고 마네킹 같은 역할을 했던 직업을 의미합니다.

 

몰락한 귀족 출신의 모델들이 트렌드 세터

 

당시 모델은 메이크업과 헤어를 직접 하면서 트렌드를 이끌었고 당시 파리나 런던에서 활동하던 모델들은 대다수가 러시아 출신의 귀족 망명자들이었습니다. 특히 샤넬은 몰락한 백작부인 중 많은 이들을 모델이나 판매 사원으로 고용하여 판매 촉진에 박차를 가합니다. 당연히 귀족 출신의 부인들이었으니 다른 여성들보다 안목과 메이크업 테크닉이 뛰어난 걸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1911년부터 태동한 스타 시스템은 영화를 통해 꽃을 피우며 여배우들의 매력을 발산했는데 헐리우드 영화 시장은 스타를 만들기 위해 전문 헤어 디자이너 및 메이크업 아티스트의 필요성을 인식하고 발굴합니다. 이에 최초의 메이크업 아티스트는 가발제조업자로 활약하던 맥스 팩터입니다. 파운데이션의 조상 도란을 만들어 판 그의 화장품은 현재까지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최초의 아티스트 맥스 팩터의 활약

 

맥스 팩터는 영화 화면상으로 입체적으로 돋보일 수 있는 최초의 파운데이션을 만들었는데 이 제품은 모공이 안보일 정도까지 얼굴에 발라준 후 파우더를 바르는 현대 메이크업의 기초를 확립합니다. 그 위에 짙은 레드 립스틱을 꼼꼼하고 또렷하게 발랐는데 흑백 필름 영화에서는 글로시하게 바르거나 엉성하게 바르면 화면상 흐려 보였기 때문에 그렇게 바른 겁니다. 또한 짙은 눈매를 위해 갈색 섀도와 마스카라, 라이너를 사용하였습니다.

 

 

이와 같은 메이크업 방식이 사진으로 도출되고, 일반 여성들은 영화 속 스타의 이미지를 동경하며 그대로 따라하게 된겁니다. 서양에서 1920년대부터 시작한 화장 방식을 한국에서는 1960년대 시작하여 1990년대 후반까지 유행하게 됩니다. 그러니까 메이크업은 흑백 화면에서 더욱 입체적이며 또렷하게 돋보이게 하기 위해 시도한 화장법이 현대 메이크업의 근간이 되었다고 보면 됩니다. 

 

 

맥스 팩터와 더불어 그로지 웨스트 모어의 활약

 

맥스 팩터에 이어 또 다른 선구자인 그로지 웨스트모어 역시 초기에는 가발전문가였다가 메이크업 아티스트로 유명해진 사람입니다

팩터와 달리 그는 제품을 화학적으로 변화시켜서 사용하지 않고 정교한 솜씨와 설득력있는 방식으로 일했습니다.  배우들로 하여금 항상 메이크업을 하고 나타나게 한 것입니다. 웨스트 모어의 다섯 아들도 그와 같은 일에 종사하였고 그의 특징은 납작한 가슴의 플래퍼 룩을 변혁시켰는데 유두 위에 거즈나 반창고를 붙여 나체의 효과를 주는 등 센스를 발휘했습니다.

 

 

새롭게 부상한 1920년대 레저 문화

 

1920년대의 다른 특징 중 하나는 앞서 언급했듯 중산층이 성장하면서 여성들도 레저 문화를 즐긴 것입니다. 수영복을 입고 일광욕을 즐기며

햇빛에 그을린 피부가 각광을 받았고 그러면서 어두운 피부가 유행하게 되었습니다.  당시 어두운 피부는 돈이 많다는 것을 입증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서로 경쟁하듯 까맣게 탄 피부를 과시하면서 인공적인 탠 제품 등이 유행하였습니다.

 

 

독일에 이어 미국에서도 화장품 원료에 대한 기술이 발달했지만 여전히 성분에 대한 폐해는 많았습니다. 수은, 비소 , 납 같은 유독 성분을 사용하였고 일본에서는 납을 함유한 흰색의 페이스 파우더로 인한 유아 사망이 증가해서 논란이 되었습니다.

 

1920년대 엘리자베스 아덴 화장품

 

 

1920년대 엘리자베스 아덴 광고

 

 

1920년대 샤넬은 새로운 패션 룩을 창조했지만 엘리자베스 아덴은 미국 시장을, 헤레나 루빈스타인은 유럽 시장을 강타하면서 화장품 업계의 입지를 굳혔습니다. 국내에서는 크게 활약하지 못했지만 미국에는 상당히 알아주는 브랜드들이지요. 백화점에 처음 입점하면서 마케팅의 중요성을 깨달은 헤레나 루빈스타인은 사업의 생명이 광고란 것을 깨달았고 엘리자베스 아덴을 비롯한 화장품 브랜드는 경쟁적으로 광고에 열을 올리기 시작했고 그러한 마케팅이 오늘날까지 이어집니다.

 

20세기 여성 메이크업 스타일 총평

 

 20세기 여성의 메이크업 스타일은 전쟁전 여성스러움의 상징이었던 깁슨 스타일에 반기를 형태를 보여줌과 동시에 여성스러운 연약함을 강조합니다. 소극적인 자기 표현과 요염함을 상징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옷은 여성스럽게 입으면서도 헤어 스타일은 보브형 커트로 짧고 발랄함을 상징했고 터번을 써서 얼굴에 대한 관심을 돌리게 합니다. 샤넬과 함께 패션을 주도한 뽐 쁘아레는 향수를 만든 최초의 디자이너로 명성을 다졌고 조세핀 베이커란 무용수는 야성적인 섹시미로 아프리카 예술을 유행하게 만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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