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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는 유교의 영향으로 여성들은 안방에거 갇혀 살다시피 했습니다.

여자는 7세가 되면 남자와 자리를 나란히 해서는 안되는 것은 물론 남편과도 내외를 하였고  외출할때는 얼굴을 가리도록 규제 당해야 했습니다.

 

 

 

그러니 화장은 자신을 위해서라기보다는 남에게 보이기 위한 것이므로 당연히 경시될 밖에 없었습니다.

고려시대 기생들의 분화장은 여전히 계승되었으나 미인경시 또는 미인박명이 고정관념화되어 일반 여성들은 외출할 때나 혼례때 외에는 화장을 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조선시대 사대부가의 가정백과라 있는 <규합총서>에는 여러 가지 두발 형태를 비롯해 열가지의 눈썹 그리는 법부터 입술연지 바르는 법 등이 기록되어 있는 책입니다. 기록에는 기생이나 유녀가 대상이 아닌 일반 여성을 대상으로 한 점이 인상적입니다. 또한 사람의 인상을 좌우하는 눈썹의 형태를 매우 중요시 여겨 눈썹화장에 신중했다는 사실이 인상적입니. 현대에도 눈썹이 인상과 관상을 결정하는 데 주요하게 작용하고 잇는 걸 보면요.

 

 

 

 

이외에도 피부를 희게 가꾸기 위해 분세수를 하기도 했습니다. 분세수는 물에 분을 얼굴에 발랐다가 물로 씻어내는 것을 말하는데 여성뿐 아니라 남성들도 즐겨했다고 합니다. 숙종때는 화장품만을 취급하는 매분구가 있어서 매분구나 방물장수를 통해 자유로운 출입이 억압되었던 조선시대 여인들에게 화장은 그나마 자연스럽게 확산될 수 있었습니다.

 

 

 

 

조선시대 여인들의 화장이 시대 남성들의 미적 요구에 부응한다는 의미가 강한 반면 남성화장은 자신의 신분을 상징하려는 목적으로 행해졌다고도 하고요.

 

 

 

 

조선시대 장연홍이라는 기생이 당시 최고의 미인으로 꼽혔다고 하네요..

 

 

 

 

 대체로 조선시대 여성들은 화장하고는 거리가 먼 삶을 살았지만, 화장을 해도 직접 화장품을 만들어 자신의 얼굴이 관상학적으로 좋아보이게 유지하는데 주력했던 걸로 보입니다. 눈썹을 또렷하게 그리고 입술을 붉게 물들이고 피부색을 하얗게 해서 건강하고 생기있는 이미지에 신경쓴 거죠. 단아함과 조신함이 최고의 미덕으로 여겼던 만큼 튀는 것을 극도로 싫어했다고 하는데, 조선시대 여인들 복장 보면 가슴이 그냥 노출되어 있던데 미의 관점이 많이 달랐나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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