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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품격 황후의 미모 혹은 산소 같은 여자로 잘 알려진 국내 최고 미인 배우 중 한명인 이영애는 나이를 먹을수록 더욱 우아하고 아름다운 매력을 발산하는 것 같아 신기할 정도입니다. 태어날 때부터 얼굴 고비 없이 꾸준히 아름답게 성장한 이영애. 2남 1녀 오빠들 사이에 막내로 태어난 이영애는 상당히 늦둥이로 태어난 걸로 알고 있는데요. 부모와 오빠들이 얼마나 애지중지 했을지 짐작이 갑니다.

 

 

 

모태 미녀 이영애의 과거와 현재 미모 비교

 

 

그래서인지 그녀를 보면 인생의 별 굴곡없이, 별탈없이 무난하게 꾸준한 사랑을 받고 자란 것 같은데요. 남편이 스무 살이나 많은 것 이외에는 크게 놀랄만한 사건은 없는 것 같습니다. 그게 너무 크게 와 닿아 이영애가 왜? 와이, 이러다 점점 익숙해져서는 와이낫 분위기가 되고 있긴 하지만요. 소문에는 이영애 남편이 몇 조원의 재산을 갖고 있다던가, 아니면 오히려 이영애가 다 먹여 살리고 있다거나 하는 분분한 이야기들이 오고가지만요.

 

 

 

1986년 잡지 표지 모델 이영애

 

 

 

 

실제로 근황은 전원 생활을 하면서 사는 것처럼 살고 쓰는 것처럼 쓰고 남녀 이란성 쌍둥이, 그것도 꽤 잘생긴 아이들을 키우며 잘사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세상 부러운 모습으로, 그래서 어떤 때는 너무 비현실적으로 보일 정도로, 그러니까 마치 살기 좋은 화성으로 오세요, 하면서 영화 속에서 판타지를 보여주는 듯한 그런 선전물을 보는 것 같다고나 할까요? 그렇게 이영애는 삶도, 외모도 비현실적으로 아름다운 모습으로 일관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영애의 지금과 같은 어떤 신의 경지를 넘은 것 같은 독보적인 품격과 이미지를 구축한 것은 아마도 2003년 대장금이후 부터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이영애는 언제부터 연예계 생활을 했을까요? 생각보다 일찍 데뷔한 것 같은데요. 그녀가 하이틴 시절인 1986년에 한 잡지 표지 모델로 등장합니다. 아마도 누군가가 너무 예쁜 학생이 있으니 모델로 좀 써보자 혹은 권유로 인해서 등장한 것이겠죠. 이후로 이영애는 비슷한 잡지 모델로 활동하면서 알바 비슷한 것을 했던 것 같습니다. 하희라나, 채시라처럼 특출하게 뜨진 못해서 거의 무명에 가까웠다고 생각합니다.

 

1990년 이영애 투유 초콜릿

 

 

 

그러다 그녀가 주목받기 시작한 때는 1990년 당시 홍콩 최고 스타 유덕화와 함께 찍은 투유 초콜릿 광고를 찍고 나서부터였는데요. 당시 친구 아버지가 추천해서 찍었다는 인터뷰 기사를 읽은 기억이 나는데. 대타 모델로 찍었다고 합니다. 암튼, 유덕화와 닮기도 했고 유덕화같은 대스타와 함께 찍어서 그녀 자신의 커리어에는 무척 도움이 된 광고 였습니다. 

 

1993년 마몽드 모델 이영애

 

 

 

그렇게 얼굴이 아주 조금 알려진 이영애를 스타덤에 오르게 한 작품은 드라마나 영화가 아닌 마몽드 화장품 광고였습니다. 1991년 이영애는 마몽드 화장품 메인 모델로 등장하면서 산소같은 여자라는 카피와 함께 커리어 우먼의 전형을 보여주면서 당시 여성의 시대상을 바꿔놓는데 커다란 역할을 합니다. 물론 당시 등장할 때는 그녀의 외모가 엄청나게 파급 효과를 준 것은 아닙니다. 십대였던 제 눈에 이영애란 모델이 각인 될 이유도 없었고, 그저 마몽드란 화장품 광고 모델 정도로만 기억되는 정도였습니다.

 

 

1995년 이영애

 

 

 

 

그렇다 해도 지금과는 전혀 다른 다소 강렬한 마스크 혹은 날카로운 이미지때문에 호감이 갔던 것도 아니었습니다. 당시에는 눈도 큼직하고 동글동글한 이미지의 여성들이 전형적인 미인으로 추앙받던 때라 마몽드에 나온 이영애가 전형적인 미인이란 생각은 들지 않았습니다. 저 화장품은 왜 저리 컨셉을 자주 바꾸고 나오나, 하는 등의 반복적인 문구와 설정에 저절로 기억된 효과는 있었을지 몰라도 말입니다. 그러나 결정적으로 1993년 마몽드의 밍크 브라운 시리즈가 폭발적인 판매를 기록하면서 이영애의 미모가 새롭게 부각된 것 같습니다. 밍크 브라운 립스틱을 안 산 사람이 없고, 그녀의 메이크업을 안 따라한 사람이 없을 정도로 인기 폭발 매력적인 메이크업을 하고 나왔습니다.

 

 

 

 

 

1990년대 초중반까지는 아무리 여성 인권, 혹은 커리어 우먼 사회라고 하더라도 여배우에 대한 이미지는 백치미 혹은 푼수미를 지향하면서 얼굴은 예쁘되 스마트함과는 거리가 있어 보이는 외모를 선호했습니다. 당시는 몸매도 중요하지 않고 그냥 얼굴만 예쁘고 친화력있어 보이면 좋게 평가되던 시기였죠. 이영애도 별반 달라 보이지 않았습니다.

 

 

 

심지어 이영애는 대장금 촬영 이후 글로벌한 스타가 되기 직전까지 다소 푼수끼가 흘렀는데요. 목소리도 얇고 허물없이 웃는 것도 있고, 성격상 온세상이 아름다워 모드로 일관한 탓인지 마냥 밝고 가볍고, 세속적인 모습을 보였습니다. 광고 속에는 그렇게 기품이 넘쳐 보이고, 드라마는 술집 작부부터 와일드한 학생, 요염한 기생 등등 다양한 영역을 넘나들면서 다양성을 보여줍니다. 일종의 시행착오 기간이라고 봐야겠죠.

 

 

 

 

 

자신의 커리어를 쌓는 기간이기도 하고요. 하지만 이후 세대에 속하는 태희 혜교 지현처럼 찍는 족족 이미지 손상없이 히트치는 여배우들에 비하여 이영애는 잊혀질뻔한 난관을 여러차례 겪게 됩니다. 비슷한 세대 김희애나 채시라 혹은 고현정 조차도 굴곡없이 탄탄하게 자기 커리어를 잘 쌓아온 것에 비해 이영애는 그렇게 좋은 산소 같은 여자 타이틀을 가지고도 드라마 복이 없었다고 봐도 될 것같습니다. 나름 주연급 배우로 활약하면서 주목받은 신인으로 잘나가는 가 싶었는데 찍는 족족 별다른 반응을 얻지 못합니다.

 

 

 

물론 그 와중에서 신인상, 인기상 연기상 탈 건 다 타면서 커리어을 쌓고 있었지만요. 이러한 일련의 시행 착오에는 그녀의 외모 호환에도 문제가 있어 보였습니다. 일단 마몽드 화장품 속에서의 이미지와 드라마 속 이미지는 조금 상반된 걸로 보입니다. 특히 앞머리를 내린다거나 HD화질 이전이라 화장이 두껍고 진해서 피부 상태가 잘 표출되지도 않았지만 피부가 썩 좋아 보였던 것도 아니고요. 화장 스타일이야 워낙 모두가 촌발 날리던 시절이었으니 저런 화장을 하고도 저렇게 예뻐 보인다는 게 신기할 정도이긴 했습니다. 암튼, 그러다가 1997년부터 그녀는 외모도 물이 오르고 연기면 연기 모든 면에서 본격적으로 이영애 납시오 모드로 정벌을 하기 시작합니다.

 

1997년부터는 다음 편에 올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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