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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년의 이영애는 영화는 폭망하지만 드라마 의가형제에서 흥하면서 자리매김을 확고히 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여의사 역할을 맡게 되면서, 그러니까 역대 배역 중 가장 온전하고 가장 이영애다운 차갑고 이지적인 이미지를 보여주면서 자기 스타일을 찾아갔다고나 할까요? 언젠부터인가는 드라마 남주가 여주덕을 톡톡히 보는 경우가 있었는데요. 특히 하지원은 남주를 돋보이게 하는 데 탁월한 공이 있는 배우잖아요.

 

 

1997년 이영애와 2021년 이영애

 

 

 


반면 이영애는 그렇게 특출한 외모임에도 남주 덕을 본 케이스 같아요. 출중한 외모나 뛰어난 연기력의 남주와 만나면서 그녀의 진가가 더 돋보였다고나 할까요? 모르겠습니다. 문득 든 생각입니다.
여하튼, 1997년의 이영애는 이지적이었고 뭔가 푼수미를 상쇄하는 그런 해였던 것 같습니다.


 

1998년 칼단발 이영애

 

 



그리고 1998년은 보다 획기적인 변신으로 지적인 이미지 굳히기 작전으로 보여집니다. 앞머리없는 짧은 단발 머리에 가운데 가르마를 한 스타일이었는데, 당대 최고의 뮤직 스타 엄정화의 헤어 스타일로도 유명하죠. 기억이 가물가물한데 이 시기에 이런 헤어스타일이 유행했던 것 같습니다.


1999년 이영애

 

 

 

 




1999년의 이영애는 가운데 가르마를 고수한 상태에서 장단발로 화사하게 대중 앞에 다가옵니다. 아마 앞머리가 안어울리는 몇 안 되는 배우가 아닐까 할 정도로 이마를 드러낼 때가 훨훨 예쁜 배우 이영애. 그리고 LG가 특별히 예뻐해서 LG의 모든 아이템을 히트시킨 효녀배우이기도 했습니다. 1999년에는 참이슬 광고로 산소같은 여자에서 이슬같은 여자 이미지로 바뀌었던 가요? 아주 이영애의 외모가 물이 팍팍 오른 시기이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1990년대 말에서 2000년초반 메이크업 트렌드를 이끈 주역이기도 했습니다. 이영애의 하얀 피부에 둥글고 가는 눈썹, 눈두덩이는 환하고 눈매는 또렷하며 입술 컬러는 옅어진 분위기의 메이크업이 각광받습니다. 엄정화가 무대 위에서 사이버틱한 메이크업으로 스타일 제시를 했다면 이영애 등 몇몇 핫한 배우들은 자연스럽고 청순한 스타일로 어필합니다.


 

2000년 이영애

 



그리고 2000년부터는 전분야에 정점을 찍는, 리즈 시절이 찾아옵니다. 여태 이럴려고 방황을 했던가 싶기도 할 정도로 영화, 연기, 광고 모든 분야를 섭렵하며 대장 먹었습니다. 1990년대 후반에서 2000년대 초반은 특히 경제적으로 너무 어려워서 IMF도 터지고 사건사고도 많았지만 이영애는 홀로 빛을 내며 돈을 긁어 모았을 것 같습니다.

 

 

 

이영애란 주가가 엄청 올랐거든요. 물론 그 뒤로도 이영애는 꾸준하게 상향 곡선을 탔습니다. 여하튼 영화 JSA에서 이영애는 멋진 여군 장교의 모습을 보여줬습니다. 장교 맞나? 이병헌과 송강호의 압도적인 연기 아래서 여배우는 얼굴 마담만 하겠거니 하고 꽂아준 티가 나지도 않게 이영애의 존재는 빛이 났습니다. 무엇보다 영화가 너무 재밌었고요. 이영애의 연기, 이미지 모든 면이 인샬라를 잊을 만큼 재기에 성공한 모습이었습니다.

 

2001년 이영애

 

 

 

 


2001년에는 그 유명한 '라면 먹고 갈래?' 대사가 나온 영화 봄날은 간다를 찍은 해입니다. 이영애는 선물과, 봄날은 간다,라는 두 편의 영화를 찍고 영화 배우로서 입지를 굳히고 있었는데요. 다시 앞머리를 내리고 화장기는 거의 없는 상태에서 자연스럽고 털털한 연기를 펼치며 호평을 받습니다. 얼굴에 화장기를 쏙 빼니까 그녀의 진가가 새로 발휘되었다고나 할까요. 그녀의 갈색 눈동자와 하얀 피부 만으로도 별도의 색조 화장이 필요 없다는 것을 보여준 해였습니다.

 

 

2002년 이영애

 

 



마몽드가 띄워주고 LG가 먹여살린 이영애는 생각보다 많은, 혹은 강렬한 광고 효과에 연기력까지 겸비함은 물론 압도적인 비주얼로 대한민국 최고의 여배우가 될 자질이 차고 넘쳤음에도 고소영이나 심은하 등에 비해 다소 밀리는 감이 없지 않아 보였습니다. 물론 남성들의 압도적인, 그것도 젊은 층보다는 나이 있는 분들이 특히 좋아라 하셨는데요. 이름도 다소 올드한 이미지가 있는데다 외모도 동안보다는 나이보다 들어보이는 느낌이 좀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삼십대 이전까지도 잘 나가긴 했읍니다만, 서른 한살이 되던 2002년 이후에는 국제적인 스타로 거듭나기까지 하는 대운을 맞이한 것 같습니다.

 

2003년 이영애


 



2003년은 인생의 대전환기라고 볼 수 있을 정도로 엄청난 일이 많이 생겨납니다. 한국을 대표하는 드라마 대장금 이후 그녀는 한류를 대표하는 스타 반열에 오릅니다. 국내서도 시청률 50%를 넘게 찍고 아시아 전역에 수출되었는데 스리랑카에서는 시청률 99%가 나올 정도로 어마어마한 인기를 누린 드라마의 여주가 바로 이영애였습니다.




지금도 이영애하면 산소 같은 여자 프레임은 없어진지 오래지만 여전히 대장금부터 떠오를 정도로 이 드라마는 엄청난 이슈를 몰고 옵니다. 이영애는 그전에도 사극에 출연한 적이 있지만 별로 주목을 받진 못했는데 이 드라마 이후로 대한민국에서 한복이 가장 잘어울리는 여성으로 인정받았습니다. 이후 이영애는 특별한 행사가 있는 날이면 한복을 즐겨 입었는데 저렇게 앞가르마에 쪽진 머리를 전통 스타일로 하고도 빼어나게 아름다운 배우는 이영애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당시 워낙 화제가 되어 이제 진짜로 완전 톱스타 반열에 오른 이영애. 대장금 이후 그녀에 관한 다큐를 본 적이 있는데요. 솔직하고 순수한 듯 푼수미가 내재적으로 흐르는 배우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뭔가 학구적인듯 하지만 본인의 학습 목적이 아닌 타이틀 욕심이 많은 것 같은 그런 거 있잖아요. 대체로 미와 재력을 겸비한 여성들이 2% 부족한 명예나 타이틀 욕심을 내듯 당시 시대상이 좀 그런 분위기였습니다. 아이유처럼 과감하게 대학을 포기하는 세대가 나오기 시작한 건 불과 몇 년 안 되고 이영애 세대는 연예인도 실력이든 특혜이든 고학력을 추구하던 시대였으니까요. 저는 당시 이영애가 스마트하다는 생각은 하지 못했는데 근 이십여 년이 흐른 지금와서 생각해 보니 성실하고, 열심히 살고 지혜로운 여성이었구나, 그리고 지고지순한 사랑꾼이란 생각도 들고요. 암튼 그랬습니다.

그리고 완벽한 성공이후 대장금보다 나은 작품으로 대중에 서야 할 부담감이 컸을 이영애의 다음 행보는 어찌 되었을까요? 다음 편에 올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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