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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 후반 여성들의 화장이 창백할 정도로 자연스러웠던 이유는 바로 빅토리아 여왕때문이었습니다. 여왕은 남편을 잃고 평생 상복을 벗지 않고 화장도 하지 않고 지냈는데요. 이것이 상류층 풍속이 되면서 평민 사회에까지 번지게 됩니다. 그나마 혈색은 좋아 보이게 유지해야 했으므로 손수건에 붉은 연지를 묻히고 뺨에 가볍게 문질렀다고 합니다. 그도 여의치 않으면 볼을 꼬집거나 입술을 깨물어서 건강해 보이게 하기 위해 노력했다고 합니다. 

 

 

 

 

19C Victoria 시대 메이크업 스토리

 

 

 

어쩌면 미묘하고 화려한 화장의 향연을 보였던 19세기 메이크업 스토리입니다. 다시 빅토리아 여왕 얘기로 돌아가자면, 그녀는 여성이 화장한 얼굴을 천박하다고 비난했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남편에 대한 애도 기간 때문에 화장이 금기시 된 것보다는 여왕의 취향이 더 작용했던 게 아닌가 싶습니다. 또한, 1870년대 경제 불황과 함께 미니멀리즘이 극대화를 이루었지만 1840년대는 과도한 장식과 화장으로 현란해지기 시작합니다. 

 

 

 

 

천연성분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19세기

 

 

사정이 이렇다보니 천연 성분에 관심을 많이 갖게 되었는데요. 뭐랄까 화장을 하지 않은 것처럼 보이면서 혈색은 좋아 보이는 감쪽같은 레시피가 필요했던 겁니다. 아마 이무렵부터 천연 화장품 개발에 박차를 가하면서 꽃과 허브 식물로 추출한 화장품이 서양에서 발달하기 시작합니다.

 

어쨌거나 금주의 시대에 술을 가장 많이 마셨듯 통치자가 화장을 천박하게 볼수록 대중은 금기에 열광하기 마련입니다. 그래서인지 아침마다 여성들은 눈썹을 한올한올 교묘하고 뽑고, 속눈썹을 다듬고 윤기있게 파마자유를 발랐으며 주근깨나 얼룩 등을 감추기 위해 쌀가루나 진주가루 등을 이용해 커버하였습니다. 

 

 

그밖에 입술색을 강조하기 위해 달팽이로 추출물을 비롯한 각종 꽃 및 잡초에서 추출한 붉은 염료로 화장품을 대체했습니다. 그런데 방법이 좀 기괴할 정도로 갖은 방법을 다 썼는데요. 레몬이나 오렌지 주스 방울을 눈에 넣어 밝게 한다거나 독성있는 벨라도나 추출물을 눈에 떨어뜨려 동공이 확장되게 만들어 치명적인 위험을 초래하는 등 무모함의 끝을 보여줍니다. 그밖에 수은, 납 성분을 얼굴에 처발처발한 것은 말 할 것도 없었고요.

 

 

창백한 화장의 부작용

 

그렇게 여러가지 실험 및 개발이 이루어진 가운데 여성들은 태양으로부터 피부를 보호하기 위해 천으로 얼굴을 가리고 다니기도 했고요. 1862년 무렵에는 비누가 제조되면서 모든 계층에서 위생 개념을 각인하기 시작합니다. 

 

결과적으로 19세기는 티 안나는 메이크업을 추구했지만 그렇게 되지는 못했다는 점입니다. 또한, 핵심적인 키워드는 창백한 피부로 점차적으로 창백한 피부를 추구하다가 얼굴에 분필, 비소, 식초 등을 발라대며 심각한 부작용을 야기한 것도 19세기 메이크업의 흑역사 중 하나라고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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